안녕하세요, 오늘은 인터넷, 미디어 및 알고리즘에 관련하여 우리의 컨텐츠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컨텐츠의 소비자로서, 직접 본인이 선택을 하여 시청, 소비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백 가지의 선택을 하며 산다.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지, 점심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퇴근 후에는 어떤 영상을 볼지. 그런데 이 수많은 선택이 정말 ‘내가 원해서’ 한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학습된 습관, 보이지 않는 권유, 무의식의 작동에 따른 결과일 뿐일까?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의사결정의 80% 이상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익숙한 선택지를 반복적으로 택하며, 우리는 그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 글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선택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진짜 원하는 건데, 왜 늘 똑같은 걸 고를까?
카페에 가면 항상 비슷한 메뉴를 고르고, 넷플릭스에선 익숙한 장르만 돌려본다. 옷장은 옷으로 가득하지만 자주 입는 건 몇 벌뿐.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도, 반복적으로 같은 선택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뇌는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익숙함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동화된 선택은 ‘선택의 자유’를 느끼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패턴화된 반응에 가깝다. 이를 ‘휴리스틱(heuristic)’이라 부르며, 뇌가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지름길이다. 문제는 이 지름길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맛있고, 더 나은, 더 나다운 것을 고를 기회를 무수히 놓치고 있지만,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익숙함 속에 머문다.
또한, 반복된 선택은 점점 더 자동화된다. 한 번 어떤 경로를 선택하면 다음에도 같은 경로를 고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탐색할 기회는 사라진다. 심지어 우리가 무언가를 '선호한다'고 느끼는 감정조차, 단순히 반복 노출의 결과일 수 있다. 이른바 ‘단순 접촉 효과(mere exposure effect)’가 작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 C씨는 매일 점심으로 비슷한 메뉴를 시킨다. 그는 “다른 걸 고르면 실패할까 봐 걱정돼서” 익숙한 선택을 반복한다. 새로운 메뉴는 맛이 없을 수도 있고, 돈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결국 ‘좋아서’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피하고 싶어서’ 내려진 결정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가 실제로는 위험 회피에 더 가까운 행동을 ‘자유로운 선택’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같은 반복은 결국 개인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준다. 다양한 시도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우리는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인식조차, 사실은 반복된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익숙함의 수렁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고른 것 같지만, 사실은 권유받은 것들
슈퍼마켓에서 눈높이에 있는 상품이 더 잘 팔리고, 앱에서 첫 화면에 노출된 콘텐츠가 더 많이 클릭된다. 이런 ‘디폴트 선택’은 우리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쉽게 외부 요인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게 좋아 보여서’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고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선택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게 아니다. 사회적 권유, 알고리즘의 추천, 광고의 노출 빈도, 주변 사람들의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선택된 선택’을 만든다. 예를 들어 SNS에서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 밈(meme), 브랜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선택지를 반복 학습시킨다.
결국 우리는 ‘자유롭게 고른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 실제로는 강하게 구조화된 틀 안에서 움직인다. 이 구조는 개인의 취향마저 표준화시키며, 다양성을 억누르고 동질적인 소비를 유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고른 것’이라 믿는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러한 선택 왜곡이 더욱 뚜렷하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클릭 패턴과 시청 시간, 반응률을 분석해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추천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이 이미 여러 번 본 것에 가깝다. 선택지가 유사한 것들로 좁혀질수록 우리는 ‘선택했다고 느끼지만 실은 선택지를 고를 자유조차 없었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청소년 D군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 시청을 하다가, 어느새 특정 정치 성향의 콘텐츠만 보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엔 ‘이쪽이 더 맞는 것 같아서’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쪽 콘텐츠만 계속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골랐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골라지도록 만들어졌더라고요.” 그의 말은 현대인의 선택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점점 더 정교해진다. 추천 시스템은 나의 과거 선택을 분석해 새로운 선택지를 줄여나간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편향된 정보가 반복된다. 우리는 점점 더 '같은 생각만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가며, 그 선택의 폭이 줄어들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오해도 깊어진다.
선택은 자유일까, 책임의 도구일까
선택의 자유는 현대 사회가 자랑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자유는 때로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선택지를 제시받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것을 고르지 못하면 실패’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는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더 단순하고 익숙한 선택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또한, 모든 선택이 ‘개인의 몫’으로 남는 구조는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개인에게 돌린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신중하게, 때로는 두려워하며 선택한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계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에서 “선택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더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그 결과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무거운 전제를 포함한다. 선택의 부담은 자유의 쾌감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사람들을 회피적 태도로 몰아넣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싶다’면서도 누군가 대신 선택해주길 바란다. 그만큼 현대의 선택은 부담스럽고, 실수하면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장된 결과’를 줄 것 같은 선택지만 고르고, 그 과정에서 위험한 도전이나 새로운 탐색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자유로운 선택은 점점 더 ‘정해진 안전한 정답 고르기’로 축소되고 있다.
이런 환경은 결국 ‘선택 불능’ 상태로 이어진다. 선택해야 할 것은 너무 많고, 각 선택에 대한 정보도 과잉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결정을 미루거나, 아예 선택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된다. 진짜 자유는 선택의 총량이 아니라,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에서 나온다.
맺으며
우리는 자율적 인간이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수많은 자동 반응, 사회적 프레이밍, 정보 설계에 의해 움직인다. 선택의 자유는 환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각하고 질문해야만 유지되는 능력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루트 위를 걷고 있는 중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진짜 자유의지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선택의 노예가 아닌, 선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가 하는 이 선택, 진짜 내가 원한 걸까?” 이 간단한 자문이, 무수한 무의식적 반응 속에서 단 한 가지 진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선택은 그저 어떤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고, 태도이며, 인생의 구조다. 그러니 더 천천히,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자. 진짜 '나의 삶'은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만들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수한 외부 요인들이 우리의 선택을 유도하고 제한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선택이 외부의 산물일 수는 없다. 우리 안의 질문, 우리 안의 망설임, 우리 안의 일탈이 결국 ‘나’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