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간의 자동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테크(tech), 기술에 모든 것을 맡긴 인간의 삶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한 삶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일정은 캘린더가 알려주며, 점심 메뉴는 배달앱이 제안하고, 저녁엔 인공지능 스피커가 조명을 켠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무엇을 대가로 하고 있는가? 기술이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면서, 우리는 어떤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알람, 캘린더, 리마인더, 스마트홈 등 자동화된 기술에 인간의 삶을 점점 더 위임하는 시대가 개인의 자율성과 판단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멍청해지고 있는 것인지’를 분석한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뇌, 판단하지 않는 뇌
일정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생일, 기념일, 약속 시간은 캘린더와 리마인더가 다 알려준다. 필요한 물건은 장바구니에 자동 저장되고, 결제일도 자동 알림이 뜬다. 기억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연결된 사고와 판단, 맥락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사고는 기억된 정보와 새롭게 주어진 정보를 비교하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스마트 디바이스가 이러한 기억의 기능을 대체하면, 우리는 정보를 축적하고 재조합하는 기회를 점점 더 잃게 된다.
전화번호 하나를 외우지 않아도 되며, 중요한 날은 앱이 알려준다. 이처럼 기술이 기억을 대신하게 되면 인간은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이는 뇌의 기억 회로를 점점 퇴화시킨다. 단기 기억, 장기 기억의 훈련이 사라진 뇌는 점차 '기억의 게으름'에 익숙해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게으름은 '판단력 저하'로 이어진다. 스스로 해야 할 일, 선택해야 할 사안, 정리해야 할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언제, 왜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보다는 캘린더가 알려주니까, 그냥 따른다. 사고의 습관이 줄어든다. 계획의 과정이 생략되고, 그 자리를 ‘알림’이 대신한다. 우리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반응만 하게 된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수동적 인간이 된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기억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테크에 의존해도 삶은 굴러가지만,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면 점차 '살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사라진다. 생각은 귀찮지만, 인간됨의 핵심은 그 귀찮음을 감수하는 데 있다.
습관조차 설계되는 삶의 피로
모닝루틴부터 수면 시간까지 앱이 관리해준다. ‘헬스케어’라는 이름으로 수면 패턴, 심박수, 걸음 수까지 실시간 측정되며, 우리는 그것을 보고 오늘 하루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일까, 아니면 건강 관리라는 착각에 빠진 것일까?
문제는 우리가 ‘결정하는 존재’에서 ‘보고 따르는 존재’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앱은 당신이 운동할 시간이라고 알리고, 또 다른 앱은 지금 물을 마시라고 알려준다. 이 지시에 순응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조율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습관조차 앱이 설계하고, 우리는 그 루틴을 따르는 피실험자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자동화는 겉보기에는 질서를 만들어주지만, 실제로는 통제받는 감각을 심어준다. 우리는 삶을 ‘관리당하는’ 존재로 점점 인식하게 되며, 자율적 주도권은 점점 뒤로 밀린다. 어떤 루틴이 내게 적합한지 스스로 실험하고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앱이 제공하는 '표준화된 루틴'에 맞춰 나를 끼워 맞추는 식이다. 삶은 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은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삶은 결국 피로하다. ‘생산적인 하루’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오히려 ‘일정대로 살지 않으면 실패한 기분’을 들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달성해야 할 목표’처럼 느낀다. 매일 목표를 체크하고, 루틴을 유지하고, 습관을 강화하는 삶은 결국 루틴 성과 중독을 낳는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예외조차 용납되지 않으며, 피로와 자기혐오가 따라온다.
습관이 강요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습관의 주인이 아니다. 앱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삶을 '설계당하는' 구조 안에 머물게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설계된 루틴을 따르는 삶인가, 아니면 스스로 조정하고 실험하는 살아있는 삶인가?
스마트홈이 만드는 둔감한 인간
집 안의 온도는 자동으로 조절되고, 조명은 동작을 감지해 켜지고 꺼진다. 냉장고는 우유가 떨어졌는지 체크하고, 청소 로봇은 매일 알아서 움직인다. 스마트홈의 기술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이상적인 것일까?
스마트홈은 ‘인간이 환경에 반응하는 경험’을 최소화시킨다. 빛이 어두우면 불을 켜고, 더우면 창문을 여는 작은 행위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환경과의 감각적 교류를 잃는다. 이런 변화는 결국 인간의 ‘감각 민감도’를 무디게 만든다. 자동화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환경에 무관심한 존재로 만든다.
인간은 본래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며 살아왔다. 계절의 변화, 기온의 변동, 햇살의 세기 등을 피부로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마트홈은 이 모든 것을 차단한다. 기술은 인간을 ‘외부 변화에 둔감한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는 감정과 사고의 민감도 저하로도 이어진다. 날씨를 느끼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며, 빛의 온도에 무관심해질수록 인간은 감각의 생물로서 둔화된다.
더불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작동할 때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 우리는 더욱 무력해진다. 앱이 먹통이 되면 문을 열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지 않으면 당황하며, 기계의 안내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의존을 넘어서 판단력의 마비, 주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우리는 점점 더 ‘반응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삶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오류 앞에서 멈칫하며, 기술이 제공하지 않는 선택지에는 불안함을 느낀다. 기술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살아주는' 순간이 온다면, 인간은 존재하되 주체적이지 않은 상태가 된다. 바로 그때가 '자동화된 인간'의 탄생이다.
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지나쳐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 인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인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을 만든다면, 우리는 결국 ‘자동화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알람을 끄고 스스로 일어나보고, 리마인더 없이 약속을 기억해보며, 자동화된 루틴을 잠시 멈춰보자. 기계가 당신 대신 살아주게 두지 말고, 삶의 주체는 여전히 당신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당신이 생각 없이 기계의 흐름을 따를수록, 기계는 더 많은 것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인간다운 삶의 감각은 점점 사라질지 모른다.
여기서 질문, 당신은 그저 따를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만족할 것인가?
혹은, 반항하고, 지금이라도, 이 글을 읽은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저항할 것인가?
물론 당신 한 사람만의 행동의 변화가 이 세상에 큰 변화는 주지 못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당신 하나의 삶을 바꿀 수는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자신의 행동과 자동화된 사회에 대해 숙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