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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아닌 다른 심리검사는 왜 인기를 못 끌까?— Big Five, 에니어그램, DISC와의 비교를 통해 본 대중성의 비밀

by 봄운 2025. 5. 4.

왜 MBTI만 살아남았나? 대중성의 조건을 갖춘 심리검사

MBTI가 아닌 다른 심리검사는 왜 인기를 못 끌까?— Big Five, 에니어그램, DISC와의 비교를 통해 본 대중성의 비밀
MBTI가 아닌 다른 심리검사는 왜 인기를 못 끌까?— Big Five, 에니어그램, DISC와의 비교를 통해 본 대중성의 비밀


심리검사는 무수히 많다. 학술적으로 더 신뢰받는 검사가 있음에도,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는 MBTI가 압도적이다. 성격검사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는 MBTI는 어떻게 수많은 경쟁 도구들 속에서 이토록 대중의 선택을 받았을까?

 

우선 MBTI는 단순하다.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이분법(예: 내향-외향, 감각-직관 등)으로 분류하고, 그 조합으로 16가지 유형을 만들어낸다. 숫자나 점수가 아니라 기호화된 ‘이니셜 조합’(예: INFP, ESTJ)으로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쉽고, 개인을 명확하게 특정지을 수 있다. 이런 구조는 밈화, 콘텐츠화, 캐릭터화가 매우 용이하다.

두 번째로, MBTI는 자기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나는 INFP야”라고 말할 때, 이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자기 정체성 서사다. 사람들은 그 유형에 자신을 맞춰보고, 설명에 공감하거나 반박하며 자기 탐색 과정을 즐긴다. 이는 단순한 진단 결과 이상의 경험이다.

반면, Big Five(5요인 성격검사)는 “외향성 78점, 정서적 안정성 52점”처럼 점수 기반의 연속형 결과를 제공한다. 이는 과학적으론 더 정확할지 모르지만, 개인의 캐릭터를 정해주는 듯한 재미는 적다. 에니어그램이나 DISC도 구조가 MBTI만큼 ‘유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대중성과 거리가 있다.

결국 MBTI는 정확함보다 ‘이야기할 수 있음’을 택한 도구다. 정확한 진단보다 재미, 공감, 자기 표현이라는 현대인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콘텐츠로서의 확장성을 갖춘 것이다.

 

Big Five, DISC, 에니어그램: 왜 확산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MBTI 외의 심리검사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왜 대중화에 실패했을까?

 

① Big Five: 가장 과학적인데도 ‘정체성 언어’가 부족하다


Big Five는 성격심리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검사 도구다. 1980년대 이후 연구자들이 다양한 성격 이론들을 통합해 만든 이 모델은 인간의 성격을 다음의 다섯 가지 범주로 설명한다.

개방성(Openness): 창의적, 상상력 풍부함

성실성(Conscientiousness): 체계적, 책임감 있음

외향성(Extraversion): 사교적, 활동적

친화성(Agreeableness): 친절하고 협력적

신경성(Neuroticism): 정서적 불안정성

이 모델은 실제로 높은 신뢰도와 타당도, 예측력까지 갖춘 도구로, 심리학 연구나 인사관리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델이 ‘정체성 언어’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외향성 64, 신경성 32” 같은 수치 기반 결과는 자기소개나 관계 형성에 바로 쓰기 어렵다. 또한 유형 구분이 아니라 연속적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정체성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SNS에서 “나는 ENFP야”라는 말은 캐릭터 하나를 통째로 전달하지만, Big Five는 ‘점수로 분석된 나’에 머무른다.

이런 이유로 Big Five는 과학적 유용성은 높지만 콘텐츠적 확장성은 제한적이다. 인간은 숫자보다 이야기로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싶어한다. Big Five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② DISC: 실용적이지만 ‘놀이’가 되지 못하는 검사


DISC는 행동 유형을 D(지배), I(영향), S(안정), C(신중) 네 가지로 분류하며, 비즈니스 환경에서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등을 분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각 유형은 다음과 같은 성향을 갖는다:

D(지배형): 목표 지향적, 결단력 있음

I(영향형): 낙천적, 감성적, 관계지향

S(안정형): 인내심, 충성심 강하고 갈등 회피

C(신중형): 분석적, 완벽주의, 구조적 사고

DISC는 MBTI처럼 이분법적이며, 기업 교육이나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서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중적으로는 확산되지 않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적용 맥락이 한정적이다. DISC는 개인의 내면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분석한다. 이는 자기 성찰보다는 업무 효율성과 직결되는 도구로 인식된다.

유형명이 딱딱하고 설명적이다. ‘난 D형이야’라는 말은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삼기 어렵다. MBTI처럼 ‘ENFP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이라는 식의 서사적 해석이 빈약하다.

유희성·밈화 가능성 부족하다. DISC는 유머, 짤, 캐릭터화 콘텐츠로의 전환이 어렵고, 개인의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못한다.

결국 DISC는 정서적 몰입이나 재미 요소 없이, 분석과 실용에 치중된 도구다. 이로 인해 콘텐츠화도, 자발적 확산도 일어나지 않는다.

 

③ 에니어그램: 철학적이고 깊지만 진입장벽이 높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은 인간의 성격을 9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무의식적 동기, 두려움, 욕구 등을 분석하는 성격 이론이다. 다음은 대표적인 유형의 예시다.

1번 개혁가: 완벽주의적, 윤리적 기준 중시

2번 조력자: 타인에게 헌신하며 인정받고 싶어함

4번 예술가: 독창성, 정체성에 집착함

8번 도전자: 권위에 도전, 강력한 리더십

에니어그램은 단순히 행동 유형이 아니라 성격의 근원적 동기와 변화 경로까지 분석한다는 점에서 내면 탐색 도구로는 깊이가 상당히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널리 퍼지지 못했다:

개념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다. MBTI는 ‘외향/내향’처럼 이해하기 쉬운 반면, 에니어그램은 “기본 두려움”, “자아상”, “성장 방향” 등의 심층 심리 언어를 전제로 한다. 결과적으로 일반인이 진입하기 어렵다.

유형명이 감성적 서사와 거리가 있다. '4번 예술가'나 '5번 관찰자'는 MBTI의 'INFP' 같은 직관적인 정체성 표현보다 약하다. 밈화나 간편한 자기 소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복잡한 구조와 해석이 필요하다. 날개(wings), 스트레스/통합 방향 등 추가 개념이 많아 쉽게 접근하고 즐기기 어렵다.

결국 에니어그램은 깊이 있는 자기 이해에는 적합하지만, SNS 시대의 대중적 놀이로 확산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과학성’보다 ‘공감’이 이긴다: MBTI의 승리는 문화 코드의 선택
결국 MBTI의 승리는 심리검사 도구로서의 우위가 아니라, 대중문화 코드로서의 확장성 덕분이다. 사람들이 MBTI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학적 타당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설명할 언어가 필요해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에 단순하고 명확한 대답을 원하는 욕구가 커졌다. MBTI는 이 질문에 “난 INFP야”, “ENFJ 친구랑 잘 맞아”처럼 빠르게 답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준다. 이는 관계 형성, 자기 PR, 커뮤니케이션 방식 모두에 영향을 준다.

반면 Big Five나 DISC는 '자기 말하기'보다 '타인 평가'를 위한 시스템에 가깝고, 에니어그램은 너무 깊거나 난해하다. 결국 대중은 MBTI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SNS, 유튜브, 기업 마케팅을 거쳐 콘텐츠 산업으로 연결되며 고착화되었다.

또한 MBTI는 ‘나’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심리검사이기도 하다. 유형별 밈, 유형별 연애, 유형별 직업 추천, 유형별 짤 등은 소비자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는 심리검사라기보다는 정체성 놀이이자 디지털 캐릭터화 도구에 가깝다.

 

마무리하며


MBTI는 심리검사 중 유일하게 “과학이 아닌데도 살아남은 도구”다. 오히려 과학의 언어보다 공감, 간결함, 공유 가능성이라는 문화적 속성이 대중성을 결정지었다. Big Five, DISC, 에니어그램이 더 정교하고 믿을 만한 평가 도구일 수는 있으나, 그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결국 사람들은 정확한 설명보다, 쉽고 재밌고 소통 가능한 언어를 원한다. MBTI는 이 점에서 압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MBTI는 심리학보다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더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